솔아문학예술관을 열며
“고향 변산의 갯벌과 푸른 솔,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문학의 성소로”
박정근
| 문학박사- 전 대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제17대 한국셰익스피어학회 회장
- 계간 『황야문학』 주간
- 솔아문학예술관 설립자 · 대표
“고향 변산의 갯벌과 푸른 솔, 인간의 영혼을 밝히는 문학의 성소로”
안녕하십니까.
솔아문학예술관 설립자 박정근입니다.
저는 평생 대학 강단에서 영미문학과 셰익스피어를 가르치고 연구해 온 학자입니다.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제17대 회장으로서 셰익스피어 연구와 학술 교류에도 힘써 왔습니다. 시와 소설을 쓰는 작가로, 희곡을 쓰고 연출하며 직접 무대에 서는 연극인으로, 그리고 노래하는 성악가로 살아왔습니다. 계간 『황야문학』을 펴내며 문학의 순수성과 시대정신을 지키는 일 또한 오랫동안 제게 주어진 소명이라 생각해 왔습니다.
대학에서 정년을 맞은 뒤, 저는 유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향 부안 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흙을 일구고 솔바람 소리를 벗 삼아 글을 쓰는 나날은 더없이 평온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요 속에서 오랫동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하나의 빚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 빚은 고(故) 박영근(1958~2006) 시인에게 진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박영근 시인은 구로공단과 인천의 노동 현장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 그리고 존엄을 온몸으로 노래했습니다. 신동엽문학상과 백석문학상은 그의 문학적 성취를 기렸습니다. 그의 시에서 태어난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한 시대를 기억하게 하는 상징적인 노래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시인의 젖줄이자 마지막 안식처인 고향 부안에는 그의 이름과 문학을 꾸준히 기억하고 연구할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같은 고향에서 문학을 해 온 사람으로서 저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 마음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사재를 들여 변산 고사포 송림 곁 약 300평의 터에 솔아문학예술관을 세운 까닭입니다.
제가 박영근의 문학에서 특히 귀하게 여기는 것은 확장과 승화의 정신입니다. 그의 문학은 노동 현장의 현실과 분노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새만금 방조제 건설로 고향의 갯벌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시선은 인간과 자연, 생명과 공동체의 문제로 넓어졌습니다.
시인에게 갯벌은 수많은 생명을 품고 길러 내며 스스로를 정화하는 살아 있는 생명의 공간이었습니다. 해창 갯벌을 바라보며 써 내려간 〈해창에서〉에는 사라져 가는 자연과 생명을 향한 시인의 절박한 마음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박영근의 문학은 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남긴 산문에는 시로 모두 표현하지 못한 삶의 결, 시대에 대한 고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박영근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주로 시에 집중되어 왔지만, 그의 산문 또한 함께 읽고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와 산문을 나란히 놓고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의 박영근을 더욱 온전히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문학 세계 전체를 깊이 들여다보는 일은 앞으로 솔아문학예술관이 이어 가야 할 중요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인공지능과 거대 자본,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이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새롭게 재편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끝까지 붙들고자 했던 문학의 언어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솔아문학예술관은 한 시인을 추모하고 지난 시간을 기억하는 기념 공간에 머물지 않으려 합니다. 문학과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과 생명의 존엄을 돌아보는 살아 있는 인문예술의 공간,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솔아문학예술관의 모습입니다. 이를 위해 문학과 연구, 예술을 한 공간에 모았습니다.
황야의 바람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이곳이 삶에 지친 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품어 주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변산의 파도 소리와 솔바람 곁에서 문학과 예술을 만나고, 박영근 시인의 숨결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의미를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솔아문학예술관에서 여러분을 만나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